어느덧 책과 함께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단순한 흥미에서 출발했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이나 유명한 자기계발서를 펼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웠고, 그것이 취미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책은 제게 단순한 오락의 수단이 아니라 인생의 지침서가 되었고, 위로의 친구가 되었으며, 삶을 반추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책과 함께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돌아보며 나누고자 합니다.
시작은 소설이었다 – 감정을 깨우다
제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시기는 20대 초반이었습니다. 대학 생활에 적응하며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책을 손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빠져든 장르는 소설이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도우, 김연수, 백영옥, 조정래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하며, 이전까지 몰랐던 감정의 결들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은 제게 상상력뿐 아니라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처음 읽었을 때, 사랑과 상실, 고독에 대한 깊은 통찰이 제 마음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문장을 곱씹으며 마음속에 새겼고, 때로는 한 구절을 다이어리에 옮겨 적으며 제 감정을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는 제가 처음으로 감정의 언어를 제대로 배워나간 시기였습니다. 책이 제 감정을 대신 말해주었고, 책을 통해 저는 감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생각의 깊이를 키운 철학과 에세이
감정을 다듬고 나니, 다음으로 찾게 된 것은 사고의 깊이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철학서나 인문 에세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한 책들은 단순히 생각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주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이나 김영하의 『읽다』, 『보다』 시리즈는 저의 독서 인생에 큰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책들은 인간 존재의 의미, 고독의 본질, 삶의 목적 같은 질문들을 제게 던져주었습니다. 처음엔 막막했습니다. 답을 찾아 헤맸고, 이해되지 않는 문장 앞에서 한참을 머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과 씨름하는 과정에서 저는 한층 더 성숙해졌습니다. 세상에는 명확한 답이 없는 질문도 있고, 때로는 질문 그 자체를 품는 것이 성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책을 통해 저는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을 조금씩 다듬어갔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준 실용서와 자기계발서
이후 사회인이 되면서는 책의 역할이 또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추상적인 사유만으로는 삶이 채워지지 않았고, 현실적인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해 실용서와 자기계발서를 찾게 되었습니다. 처음 읽었던 『미라클 모닝』은 평범한 일상에 질서를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자기 결정성 이론』 같은 심리학 서적은 나의 행동과 습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기계발서는 때로는 과장되거나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제게는 그런 책들에서조차 삶의 실마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컨대 하루 루틴을 점검하거나 작은 목표를 세우는 습관은 이러한 책들에서 배운 것이며, 지금도 제 일상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한, 감정관리나 대인관계에 관한 책들도 사회생활에서 겪는 다양한 갈등 상황에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책이 준 위로, 그리고 용기
책은 제가 힘들 때마다 위로를 건넨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 실패를 경험했을 때,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았을 때도 늘 책은 곁에 있었습니다. 그런 책들은 무조건적인 긍정을 말하지 않았고, 그저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습니다.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는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용기를 주었고, 류시화의 시집은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조용한 친구 같았습니다.
또한 책을 통해 용기를 얻은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책은 저를 행동하게 만들었습니다.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한 걸음을 내딛게 해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 힘은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를 통해 전달된 경험, 철학,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10년의 기록, 앞으로의 나를 위한 발판
돌아보면 책은 단 한 번도 저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조언자로,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도전의 대상이자 거울로 제 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책을 통해 인생이 바뀐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 말을 믿습니다. 책은 인생의 방향을 바꿔줄 수도 있고,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을 때 조용히 옆에 있어줄 수도 있으며, 아주 작지만 단단한 성장을 매일 조금씩 이끌어줍니다.
앞으로의 10년도 저는 책과 함께할 것입니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고, 또 낯선 사유를 배워가며 제 안의 세계를 더 넓히고 싶습니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붙잡고 고민할 것이고, 어떤 문장은 현실에서 되새기며 스스로를 다잡을 것입니다. 책이 저를 성장시켰듯, 언젠가 저도 누군가에게 좋은 문장 하나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